18년 만에 방중한 스페인 군주…中·EU 무역 갈등 속 밀착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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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18년 만에 중국을 국빈 방문한 스페인 국왕과 만나 상호 투자와 협력 확대를 제안했다.
12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과 회담을 갖고 "양국이 함께 더 안정적이고 발전적이며, 국제 영향력이 있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길 원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스페인 국왕이 중국을 방문한 것은 2007년 후안 카를로스 1세 방중 이후 18년 만이며, 유럽 군주로는 2018년 노르웨이 국왕 이후 7년 만에 중국을 찾은 것이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중국은 양질의 스페인산 상품을 더 많이 수입할 의향이 있다"면서 "신에너지·디지털경제·인공지능(AI) 등 신흥 분야 협력 잠재력을 발굴하며, 상호 투자를 확대하고, 더 많은 상징적 프로젝트를 구축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또한 "각자의 장점을 보완해 라틴아메리카 등 제3국 시장을 공동으로 개척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양측은 민심의 소통을 촉진하고, 문화·교육 분야의 교류를 강화하며, 상대국 문화 및 언어 기관 운영이 원활하도록 상호 지원해야 한다"면서 "중국 측은 스페인에 대한 무비자 정책의 시행을 계속 연장할 것이며, 인적 왕래를 편리하게 해 양국 국민이 더 가까워지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 주석은 올해가 유엔 창립 80주년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사회 제도 차이와 이념 분열을 초월하는 '인류 운명공동체'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페인과 함께 국제 사무에서 유엔이 핵심적 역할을 발휘하도록 지지하고, 자유무역 규칙과 국제 경제무역 질서를 수호하며, 더욱 공정하고 합리적인 거버넌스 체계와 인류 운명공동체 구축을 추진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에 펠리페 6세 국왕은 "스페인 정부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확고히 이행해 국가의 영토 완전성을 유지하는 것을 지지한다"며 "스페인과 중국은 많은 국제 문제에서 이념이 매우 일치하며, (양측) 모두 다자주의를 지지하고, 대화와 협의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화답했다.
또한 "중국 기업의 투자가 스페인 경제 발전과 녹색 전환을 강력히 촉진했다"면서 "스페인은 중국과 긴밀한 교류를 유지하고, 중국의 '15차 5개년 계획' 시행이 가져오는 중요한 기회를 포착해 경제무역·산업·과학기술·녹색 에너지 등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신화통신은 회담 후 양국 정상이 경제무역·과학기술·교육 등 10개 분야 협력 문서에 서명했다고 보도했으나, 구체적인 문서의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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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6세 국왕의 이번 방문은 특히 중국과 유럽연합(EU)이 무역 갈등을 겪는 와중에 스페인이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착하려는 시도로 읽히며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대외적인 방중 목적은 양국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협정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에 앞서 스페인의 대중국 무역적자 개선과 실질적 경제협력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란 관측을 낳고 있다.
스페인은 지난해 6월 EU가 중국산 전기차에 관세를 부과한 이후 오히려 중국과의 경제협력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지난 3년간 세 차례나 중국을 방문했고, 최근에는 중국에 자동차·친환경 기술·신흥 산업 분야의 투자를 요청하고 있다. 시 주석은 산체스 총리 취임 첫해인 2018년 스페인을 국빈 방문한 바 있다.
로이터 통신은 "스페인이 EU 내에서 중국과의 교류를 주도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반에서 외교적 존재감을 확장하려 하고 있다"면서 "중국 역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조치로 수출이 압박받는 가운데, 전기차 보조금 문제로 촉발된 EU와의 무역 갈등을 완화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기준 스페인의 대중 무역 적자 규모는 377억 유로(약 64조원)로, 10년 전인 2014년 158억유로(약 27조원) 대비 137% 급증했다.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EU의 관세 부과에 대한 보복 조치로 중국이 EU산 돼지고기에 최대 62.4%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면서, 유럽 최대 돼지고기 수출국인 스페인은 직격탄을 맞게 됐다.
다만, 반덤핑 조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스페인은 최고 세율을 32.7%로 낮춘 상태다.
스페인은 축산물 등의 대중국 수출 확대를 바라고 있다. 고위급 교류로 양국 관계가 최근 호전되면서 지난 1~7월 스페인의 대중국 돼지고기 수출액은 7억 유로(1조2천억원)로 전년 동기보다 8% 증가했다.
한편, 전날 청두에서 양국 기업인 회의를 주최한 펠리페 6세 국왕은 12일 시 주석 및 리창 총리와의 회담에 이어 13일에는 양국 기업인 회의 참석과 베이징 외곽에 있는 스페인 자동차 부품업체 헤스탐프 중국 공장 방문 일정을 소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