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현대미술관] 제대로 보기 힘들었던 백남준…부산서 사후 국내 최대 회고전

양은서 기자 승인 2024.12.02 20:50 의견 0

부산현대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와 함께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전

플럭서스 초기부터 레이저 작품까지 160여점…대형 설치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 등

(부산=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백남준(1932∼2006)은 해외에서 더 주목받은 작가였다. 1982년 미국 휘트니 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렸고 2000년에는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1993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는 독일관 대표로 참가해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사후에도 해외에서는 그를 조명하는 전시가 여러 차례 마련됐다. 2010년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팔라스트 미술관에서, 2012년 미국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 미국 미술관에서 특별전이 열렸다. 2019년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관인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사후 최대 규모 전시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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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1961년 퍼포먼스 비디오 '손과 얼굴' 백남준 '손과 얼굴', 1961, 비디오, 흑백, 무성, 1분 42초

백남준아트센터 비디오 아카이브 ⓒ백남준 에스테이트 Nam June Paik Estate./ 사진=부산현대미술관

그러나 국내에서는 백남준의 작품 전반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작가 생전인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 당시 미술관 개관 이래 최다 관객인 11만명이 몰리며 큰 관심을 끌었지만, 사후에는 백남준아트센터 전시 외에는 그를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대규모 전시가 거의 없었다.

이런 배경에서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지난달 30일 개막한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은 눈에 띄는 전시다. 백남준아트센터 소장품을 중심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 독일 프랑크푸르트현대미술관 등에서 빌려온 작품과 사진, 영상 등 160여점으로 구성된 백남준 사후 국내 미술관에서 열리는 최대 규모 전시다.

백남준의 초기부터 말년까지 시기별 주요 작품들을 통해 다양한 기술을 이용해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작업을 하며 시대를 앞서간 천재적 예술가의 면모를 확인할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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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럭서스 챔피언 콘테스트' 만프레드 레베, '플럭서스 챔피언 콘테스트', ≪페스톰 플럭소럼 플럭서스: 음악과 반음악, 기악 극장≫, 1963,

백남준(작가 및 공연자), 흑백 사진, 20.3×25.4cm,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 Manfred Leve./ 사진=부산현대미술관

전시는 1961년 퍼포먼스 비디오 '손과 얼굴'로 시작한다. 20대 백남준이 손을 이용해 얼굴을 가리고 드러내는 퍼포먼스를 담은 작품이다. 백남준의 얼굴을 마주한 뒤 붉은색으로 꾸며진 전시장에 들어서면 백남준이 참여한 전위예술그룹 '플럭서스'의 퍼포먼스 활동을 각종 자료로 소개한다. 소변을 오래 누는 작가가 챔피언이 되는 퍼포먼스 '플럭서스 챔피언 콘테스트'(1963) 사진 자료 등을 볼 수 있다.

이어지는 파란색 전시 공간에서는 텔레비전(TV)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1965년 미국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자석 TV'를 비롯해 백남준이 유명해지는 계기가 됐던 'TV 부처' 시리즈 등 다양한 텔레비전 시리즈를 선보인다. 백남준이 1971년 샬럿 무어먼과 퍼포먼스를 위해 만든 'TV 첼로', 영상들을 합성하고 변조해 새로운 영상을 만들어내는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도 이곳에서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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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가장 오래된 TV'와 'TV 부처'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지난달 30일 개막한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전에 '달은 가장 오래된 TV' 작품을 배경으로 'TV 부처'가 전시된 모습./ 사진=부산 현대미술관

1층과 2층 전시장을 잇는 공간에서는 대형 설치 작품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1993)가 재현된다. 수직으로 뻗은 나무에 크고 작은 모니터가 여럿 달린 작품으로, 1993년 예술적 스승인 존 케이지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았다. 나무 12그루와 23개 모니터를 사용한 작품 속 모니터에서는 류이치 사카모토 연주에 맞춰 오키나와 민요를 부르는 백남준과 샬럿 무어먼의 모습 등이 상영된다. 그 옆에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걸리버'가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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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지난달 30일 개막한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전에 전시된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 사진=부산 현대미술관

1980년대 후반부터 2006년 타계 전까지 작품들을 모은 2층 전시장에서는 백남준이 만든 다양한 로봇들을 볼 수 있다. 백남준은 1963년 독일에서 첫 개인전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 여러 엔지니어와 교류하며 전자공학을 연구했다. 이때 처음 만든 로봇인 '로봇 K-456', 1993년 베네치아비엔날레 독일관에 전시됐던 '칭기즈 칸의 복권' 등 의미 있는 작품들이 전시에 나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손자와 손녀 등 3대 가족을 로봇으로 표현한 '로봇 가족' 시리즈 중 할아버지와 할머니 로봇도 이번 전시에서 한데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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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이 처음으로 만든 로봇 '로봇 K-456'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지난달 30일 개막한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전에 출품된 백남준의 '로봇 K-456'./ 사진=부산 현대미술관

전시 마지막은 2000년을 전후한 작품들이 장식한다. 레이저 작품 '삼원소'는 1997년부터 3년여에 걸쳐 제작된 작품 '원', '사각형', '삼각형'을 합친 것으로, 2000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때 선보인 작품이다. 맞은편 방에서는 서태지와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울려 퍼진다. 108개 TV 모니터를 통해 8·15 광복과 한국전쟁, 전통 부채춤과 승무, 당시 대중문화를 대표한 서태지와아이들의 모습이 등장하는 작품 '108번뇌'로, 1998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처음 공개됐다.

미술관 내 영화관에서는 백남준의 비디오 대표작들을 대형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 백남준이 자신의 예술을 설명하는 인터뷰 형식의 비디오 '백남준: 텔레비전을 위한 편집'(1975)부터 '호랑이는 살아있다'(1999)까지 15점을 볼 수 있다. 지난해 개봉한 백남준 다큐멘터리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도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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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TV 왕관' 백남준, 'TV 왕관', 1965(1999), 회로 조작 CRT TV 모니터 1대, 신호 발생기 2대, 온도 조절기 1대, 앰프 2대, 가변크기,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백남준 에스테이트 Nam June Paik Estate./ 사진=부산현대미술관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백남준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백남준아트센터와 공동 기획한 전시로, 출품작 160여점 중 140점이 백남준아트센터 소장품이다.

강승완 부산현대미술관장은 전시 개막식이 열렸던 지난달 29일 "평생 미술관에서 일해온 미술관인으로서 늘 부채감이 있었지만, 백남준 소장품이 한 점도 없는 미술관에서 백남준 전시를 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시도였다"면서 "백남준 아트센터가 처음으로 소장품을 대량 반출하는 결단을 내려 이번 전시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강 관장은 이어 "백남준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작품을 제대로 본 사람이 없다"면서 "(이번 전시를 계기로) 국내에서 백남준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의미 있는 후속 전시들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 16일까지. 무료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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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레이저 작업 '삼원소'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지난달 30일 개막한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전에 전시된 '삼원소'./ 사진= 부산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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