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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부 보스턴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도시 세일럼(Salem)에는 '유길준'이라는 이름이 곳곳에 남아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 유길준(1856∼1914)의 흔적이다.
1883년 보빙사의 일원으로 미국에 온 뒤 세일럼에서 유학한 그는 에드워드 모스(1838∼1925) 박사와 교류하며 한국의 문화를 소개했다.
모스 박사가 독일인 묄렌도르프(1848∼1901)를 통해 한국 유물 225점을 구입할 때는 흔쾌히 자문했고, 귀국할 때는 옷과 소장품, 편지 등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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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피보디에식스(Peabody Essex) 박물관의 귀한 자산이 된 유물이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으로 잘 알려진 피보디에식스박물관이 한국실을 새롭게 선보인다. '유길준 한국실'(Yu Kil-chun Gallery of Korean Art and Culture)이라는 이름과 함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피보디에식스박물관이 232㎡(약 70평) 규모로 한국실을 확장해 재개관했다고 19일 밝혔다.
지난 2007년 이후 약 18년 만의 대대적인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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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 가족사진./ 사진=미국 피보디에식스박물관
피보디에식스박물관은 미국 내에서 다양한 한국 소장품을 수집한 박물관으로 유명하다.
국제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사업가들이 뜻을 모아 1799년 설립한 박물관은 미국 최초로 아시아 예술 및 민속 유물을 수집해왔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19세기 조선의 개항 이후 한국과 미국을 왕래한 인적 교류를 기반으로 한국의 문화유산을 수집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말했다.
새 단장을 마친 한국실은 100여 점의 유물을 한자리에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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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준의 젊은 시절 모습이 담긴 초상부터 에드워드 모스 박사에게 쓴 편지, 조선 내무부가 미국인 선교사에게 선물한 육각 은제함 등 다양한 유물을 아우른다.
조선을 다녀간 뒤 기행문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을 남긴 퍼시벌 로웰이 선물 받은 서양식 신사 모자, 1893년 시카고 박람회에 출품된 의자도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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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전시품 왼쪽부터 퍼시벌 로웰이 한국 체류 중 선물 받은 서양 신사 모자, 조선 내무부가 마벨 폴링에게 선사한 잉크통, 쌍학흉배./ 사진=미국 피보디에식스박물관
한·미 외교사를 엿볼 수 있는 소장품도 공개된다.
1896년부터 1900년 초까지 주미 공사를 지낸 이범진(1852∼1911)의 아내와 두 아들이 담긴 가족사진은 한국실 전시를 통해 처음 선보이는 것이다.
사진에는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만국평화회의가 열렸을 때 특사로 파견됐던 차남 이위종(1887∼?)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박물관 측은 전했다.
피보디에식스박물관은 대한제국 마지막 미국 공사였던 에드윈 모건(1865∼1934)의 유품을 기증받아 조사하던 중 사진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한국실 재개관은 한국 미술 전문 큐레이터인 김지연 씨가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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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 작가, 'Syncopation # 15'./ 사진=미국 피보디에식스박물관
박물관은 한국실 재개관을 준비하며 자체 예산을 활용해 국내 현대 작가와 재미 한국 작가의 작품 15점을 구입했으며, 이 가운데 10점을 전시에 활용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5)의 작품을 비롯해 정연두, 양숙현, 데이비드 정, 원주 서 작가 등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한국실에서 더 많은 이들이 한국의 역사와 예술을 접하고, 양국 간 문화교류가 한층 깊어질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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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행사 모습 왼쪽 세 번째부터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장, 린다 하티건 피보디에식스박물관장, 김재휘 주보스턴 총영사./ 사진=미국 피보디에식스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