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UN평화공원에 게양된 참전국 국기들. /사진=한국유엔신문

부산 남구 대연동에 위치한 UN평화공원은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UN 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특별한 장소이다. 이 공원은 전 세계 22개국에서 파병된 참전국의 희생과 용기를 기억하며, 전쟁의 아픔을 딛고 평화를 지향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UN평화공원의 상징성은 단순한 조형물이나 조경에 머무르지 않는다. 공원 곳곳에는 참전국의 국기와 기념비, 참전용사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가 배치되어 있으며, 이는 각국 병사들이 남긴 평화의 발자취를 상징한다. 특히 UN기념묘지와 연결된 이 공간은 세계 유일의 UN 전몰장병 묘역과 인접해 있어 국제적인 의미를 더한다.

공원 내 ‘평화의 길’과 ‘추모의 벽’은 방문객들에게 전쟁의 역사와 희생의 무게를 체험하게 하며,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이곳을 찾는 발걸음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발걸음이 더욱 깊어지기 위해선, 마음속 준비가 먼저다. 그냥 공원이라 생각하면 나무가 많고 길이 예쁘다는 느낌만 남겠지만, 이 공간의 본질은 ‘기억’이다. 그래서일까. 입구에 다다랐을 때, 말없이 고개를 숙이게 된다. 별다른 안내문이 없어도 괜히 두 손을 모으게 된다. 묵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그것이 이 공간이 가진 힘이자,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다.

묵념은 단지 형식적인 예절이 아니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는 몇 초 동안, 우리는 과거로 향한다. 낯선 땅에 발을 디뎠던 스무 살, 스물두 살 병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가족도, 언어도, 문화도 다른 이곳에서 목숨을 바치기까지의 마음을 우리는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존중할 수는 있다. 그 존중이 바로 이 공원을 걷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공원 안을 걸을 때에는 특별한 규칙보다 조용한 배려가 중요하다. 많은 말보다는, 잠시 침묵이 더 어울리는 공간이다. 함께 걷는 사람과 나직하게 대화하거나, 잠시 말을 아껴보는 것도 좋다. 웃고 떠드는 일상적인 감정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그 감정을 조금 눌러보는 것이 어울린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 비석 앞에서 발걸음이 멈추고, 낯선 이름 하나에 오래 시선이 머물게 된다. 바로 그런 순간이, 이 공간을 기억하게 만드는 진짜 관람이다.

사진을 찍는다면, 의미를 담아 찍자. ‘이곳에 왔다’는 인증보다는, ‘이 공간이 내게 어떤 생각을 남겼는가’를 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조형물이나 묘비 앞에서 단정한 태도와 조용한 표정은 그 자체로 예의가 된다. 누군가의 이름 앞에서 웃는 얼굴을 짓기보다는, 한순간만이라도 마음을 담아 바라보자. 이 공원은 단순히 걷고, 찍고, 나가는 곳이 아니라, 머물고, 생각하고, 마음을 남기는 공간이다.

또한, 꼭 지켜야 할 예절은 작지만 소중한 것들이다. 누군가의 추모를 방해하지 않도록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는 음량을 줄이고, 통화는 자제하자. 아이들과 함께 왔다면, 이곳이 어떤 의미를 가진 곳인지 간단히라도 설명해 주는 것이 좋다. 그런 설명 하나로, 아이는 ‘예의’를 행동으로 배우게 된다. 그것 또한 이 공간이 가진 교육적 힘이다.

공손한 마음을 가지자. 무겁고 엄숙하게만 느낄 필요는 없다. 다만, 그 자리에 깃든 마음들을 이해하려는 자세는 꼭 필요하다. 그것은 규칙이라기보다, 사람으로서의 도리이다. 말보다 태도로, 정보보다 감정으로 기억되는 장소가 있다면, 바로 이곳이 그렇다.

UN평화공원은 전쟁의 아픔과 평화의 가치를 동시에 담고 있는 상징적인 장소이다. 단순히 걷는 공간이 아닌, 감사와 경외의 마음으로 마주해야 하는 역사적 현장이며, 그 의미를 깊이 새기고 방문하는 것이 진정한 관람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