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형 선고로 선거권 자동박탈…"합리성·객관성·비례성 부합안해"

"명확한 기준과 심사 필요…중대 사유 없는 한 선거권 보장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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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자 판결./ 사진=일러스트

유엔 자유권위원회가 종교적 신념 등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실형 선고에 따른 선거권 박탈이 자유권규약에 위배된다며 권리 구제 조치를 이행할 것을 권고했다.

8일 관보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 3월 유엔 자유권위원회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개인진정에 대해 이같은 최종 견해를 내놨다고 밝혔다.

앞서 종교적 신념 등에 따른 병역거부(병역법 위반)로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2016년 4월 총선에서 선거권을 뺏긴 김 모 씨 등 4명은 한국정부가 보통 선거권을 보장하는 유엔 자유권규약 제25조를 위반했다며 지난 2019년 자유권위원회에 개인진정을 제기했다.

위원회는 심리 결과 "병역법에 따라 진정인들이 징역형을 선고받음으로써 자동으로 발생한 선거권 박탈 조치는 합리성·객관성·비례성이라는 필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이는 자유권규약 25조에 따른 진정인들의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자유권규약 제25조는 어떤 차별이나 불합리한 제한 없이 선거에 참여할 권리를 규정한다.

위원회는 우선 수형자에 대한 자동적인 선거권 박탈이 개별적·일반적 차원에서 재범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어떤 범죄 유형이 민주 질서와 공익에 더 위해한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형기를 기준으로 선거권 제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지만, 위원회는 보다 명확한 법적 기준과 심사가 적용돼야 한다고 봤다.

법무부는 "강력범죄도 범죄의 양상이나 동기에 따라 민주주의의 근본적 가치를 저해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며 "선거권에 대한 비례적 제한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당사국의 입법기관이 결정할 사안"이라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수형생활과 그에 따른 제한은 범죄에 대한 처벌이고, 선거권 박탈은 이같은 처벌과는 별개이자 추가적인 징벌"이라며 "다른 형벌 유형과 마찬가지로 선거권 박탈의 합리성을 구체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선 명확한 법적 기준과 심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권자 또는 투표 조작, 유권자 탄압, 선거자금 관련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이상 수형자들이 저지른 범죄와 선거권 박탈 간 관련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며 "중대한 사유가 없는 한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민주적 선거 절차에 참여할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또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사상·양심·종교의 자유에 내재된 권리라며 선거권 박탈은 이같은 본질적 권리를 행사한 결과였다고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우리 법무부가 김씨 등에게 선거권 침해와 관련한 구제 조치와 배상을 제공하는 한편 향후 유사한 권리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수형자에 대한 선거권 제한 법률과 이행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위원회의 최종 견해를 국내에 배포하고, 최종 견해 이행을 위해 우리 정부가 취한 조치를 180일 이내에 위원회 측에 알릴 것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