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비우기 사업, 공공시설물 다이어트…"디자인이 삶 변화"

전 WDO 의장 "인상 깊은 부산, 디자인 발전이 청년 유출 막을 것"

요즘 부산을 흔히 '노인과 바다'라고 합니다. 바다가 있고 고령층 비율이 높으니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틀에 가두기에는 부산이 가진 잠재력이 큽니다. 부산에는 산, 바다, 강이 있고 전통과 혁신, 무질서 속의 조화, 현대와 과거 등이 상반된 요소가 어우러져 있습니다. 세계디자인기구는 2028년 세계디자인수도로 부산을 선정했습니다. 세계에서 11번째, 아시아에서 비수도권 도시로는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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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 영국 런던에서 세계디자인수도 선정 수락 연설하는 박형준 부산시장./ 사진=세계디자인총회 공동취재단

"세계디자인수도 선정은 부산이 꿈꾸는 미래를 실현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지난달 10일 제34회 세계디자인총회가 열린 영국 런던 바비칸 센터(Barbican Centre).

이곳은 1940년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14만㎡ 면적의 지역이 파괴된 뒤 지어진 세계 최초의 도심 복합 시설이다.

13개의 건물에 아파트와 상업시설이 있음에도 열린 구조로 설계된 영국의 상징적 건축물 중 하나다.

이곳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은 2028년 세계디자인수도(WDC) 선정 수락 연설을 했다.

그는 "디자인이 인간의 삶을 변화하고 도시의 미래를 재창조하며 세상을 더욱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을 부산이 입증해 보이겠다"고 말했다.

세계디자인수도는 세계디자인기구(WDO)가 2년마다 디자인으로 경제·사회·문화·환경적 발전을 추구하는 도시를 선정하는 국제 프로그램이다.

부산은 이번 선정으로 토리노, 서울, 헬싱키, 케이프타운, 타이베이, 멕시코시티, 릴 메트로폴, 발렌시아, 샌디에이고·티후아나, 프랑크푸르트 라인마인에 이어 11번째로 WDC가 됐다.

선정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었다.

인구 300만명에 불과한 부산이 중국의 대도시 항저우와 경쟁해 이긴 것이었다.

2016년 제11회 G20 회의, 2022년 올림픽을 치른 항저우는 인구 1천300만명의 대도시다.

쟁쟁한 도시 항저우와 맞붙어 쉽지 않은 싸움이라고 생각한 부산시 관계자들은 이번 선정으로 큰 자신감을 얻었다는 후문이다.

세계디자인총회에서 만난 토마스 가비 전 세계디자인기구 회장은 "부산의 다양성, 개방성, 포용성이 디자인을 통해 도시를 바꿀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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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디자인수도 선정 수락 연설하는 박형준 부산시장./ 사진=세계디자인총회 공동취재단

지난 6월 부산을 방문한 실사단장인 루이사 보키에토 WDC 조직위원장은 좀 더 구체적인 선정 이유를 들었다.

그는 "항저우와 부산은 성격이 매우 다른 도시"라며 "도시 규모 자체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프로젝트 깊이, 지역성과 연결성, WDC가 지향하는 디자인의 미래상을 함께 평가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부산시는 지역, 대학 등 민간과 프로젝트 추진 역량을 보여줬고 특히 과거와 현재의 연결이라는 프로젝트 주제가 인상 깊었다"며 "부산에는 현대적인 지역도, 도움이 필요한 지역도 있는데 WDC 선정이 혁신과 전통을 넘어 변화를 끌어내리라 봤다"고 말했다.

WDO는 부산의 잠재력을 높이 샀고 전 세계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 것이다.

사실 WDC 선정 이전부터 부산시의 디자인 정책은 준비되고 진화해왔다.

2007년 부산디자인센터(현 부산디자인진흥원)를 개원하고 국제디자인어워드 개최, 총괄 건축가·총괄 디자이너 위촉, 디자인 전문조례 제정, 시민 공감 디자인단 운영 등을 이어왔다.

지난해 광역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시 조직으로 미래디자인본부를 출범하고 '시민이 행복한 품격 있는 디자인 도시 구현'이라는 프로젝트를 발표해 실행하고 있다.

지난 6월부터 부산 관문인 부산역 광장과 그 주변에 도시 비우기 사업을 진행했다.

그동안 사용자나 도시 효율의 관점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이 우후죽순으로 설치된 공공시설물을 다이어트했다.

부산시는 유관기관과 수십 차례 회의를 통해 부산역 안팎의 총 560개 공공시설물 중 103개 철거, 47개 통합, 162개 정비 등 82%인 312개 시설물을 개선했다.

앞으로 도시 비우기 관점에서 접근하면 공공시설물 접근이 쉬워지는 것은 물론 중복 예산도 대폭 줄일 수 있다.

이 밖에도 디자인 시티 부산 국제 콘퍼런스, 유명 디자이너 초청 디자인 토크, 세계 도시브랜드 포럼, 부산디자인 페스티벌 등도 이어지며 WDC 선정의 밑거름을 다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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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디자인수도 선정 기념사진 왼쪽부터 강필현 부산디자인진흥원장, 루이사 보키에토 WDC 실사단장, 박형준 부산시장, 토마스 가비 전 세계디자인기구 회장, 나건 부산시 총괄디자이너./ 사진=세계디자인총회 공동취재단 제공

부산은 WDC 선정으로 글로벌 허브 도시로 도약하는 계기를 맞았다.

디자인은 단순히 제품이나 시각, 실내·환경을 바꾸기도 하지만 거주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거나 지속 가능한 건축을 가능케 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부산의 미래가 디자인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WDC 부산의 주제는 '모두를 포용하는 도시, 함께 만들어가는 디자인'(Inclusive City, Engaged Design)이다.

토마스 가비 전 세계디자인기구 회장은 "부산은 인구밀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산지와 아파트가 가득한 다양성을 지녀 인상 깊었다"며 "청년 유출이 심각하다고 들었는데 디자인이 발전한다면 젊은 세대가 부산에 더 오래 머물고 타지역 인구가 부산으로 유입될 요인이 될 듯해 부산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