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치오家 3대에 걸쳐 120여종 출간…'지리학'·'단테 지옥도' 등 53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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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서둘러라 : 알도 마누치오, 세상을 바꾼 위대한 출판인' 포스터./ 사진=국립세계문자박물관

"학문 자료를 소형 책자로 출판하려던 알도 마누치오의 발상은 오늘날 아이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와 비교됩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책의 대중화'를 이끈 이탈리아 출판인 알도 마누치오가 일생을 바쳐 편찬한 책을 만나보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한국-이탈리아 상호 문화교류의 해'(2024∼2025)를 기념해 이달 28일 개최하는 기획특별전 '천천히 서둘러라 : 알도 마누치오, 세상을 바꾼 위대한 출판인'이다.

출판인이자 인문학자인 알도 마누치오(1449∼1515)는 휴대할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옥타보 판형'과 기울어진 글자체인 '이탤릭체'를 세계 최초로 도입해 출판계 혁신가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가 설립한 베네치아 알디네 인쇄소는 3대에 걸쳐 총 120여 종의 책을 출간하며 본격적인 '책의 시대'를 알렸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정연 세계문자박물관 학예사는 24일 서울 종로구 HJ비즈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알도 마누치오의 인쇄 혁신을 이야기하는 전시"라며 "마누치오의 노력이 누구나 손쉽게 책을 가지고 다니는 '대인 독서문화'로 이어졌다는 점을 알리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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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 사진=국립세계문자박물관

전시에서는 '지리학'(Geography)과 '단테 지옥도'(Divine Comedy) 등 마누치오 가문의 대표 출간 책 46점을 비롯해 총 53점의 책을 관람할 수 있다.

1482년 출간된 '지리학'은 고대 그리스 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안내서'를 르네상스 시대에 개작한 책으로, 원본에 없던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페인, 팔레스타인 지도가 추가돼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로마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된다. 이 학예사는 "'지리학'은 이탈리아를 포함해 새로운 지도 4점이 추가된 책으로, 당시 유럽의 지리 인식이 어떻게 확산했는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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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지옥도'./ 사진=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지옥의 모습을 그린 삽화가 수록된 단테 '신곡'의 개정판 '단테 지옥도'도 관람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책이다. 지옥의 구조를 세밀하게 묘사한 대형 목판화와 지옥에서 처벌받는 죄악의 개요도 등 흥미로운 자료가 수록돼 있다. 1515년 출간된 이 책도 로마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학예사는 "마누치오가 초판의 전통적인 주석과 철자 등의 오류를 바로잡아 개정판을 인쇄했다고 전해진다"며 "초판과 달리 개정판에서는 지옥의 구조를 세밀하게 묘사한 삽화가 실려 있어서 무척 흥미로운 자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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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의 가장 경건한 편지'./ 사진=국립세계문자박물관

1500년에 출간된 로마 국립중앙도서관의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의 가장 경건한 편지'도 놓쳐서는 안 될 책이다. 이탈리아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가 남긴 368통의 편지를 모은 서간집으로, 세계 최초로 이탤릭체가 사용된 책으로 유명하다. 현재까지 널리 사용되는 이탤릭체의 초기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희귀본으로, 예수를 뜻하는 'iesus'가 이탤릭체로 새겨진 성녀 목판화가 실려있다고 이 학예사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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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연대기'./ 사진=국립세계문자박물관

세계문자박물관이 소장한 '뉘른베르크 연대기'(Nuremberg Chronicle)도 주목해야 할 책이다. 1493년 출간된 책으로, 당대 유럽 주요 도시의 전경을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 등 1천800여 점의 목판화 삽화가 수록돼 있다. 현존하는 인큐나불라(15세기 이전 서양에서 인쇄된 책) 가운데 가장 유명한 책으로, 15세기 로마와 베네치아 등의 전경이 삽화로 담겨서 그 시대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세계문자박물관은 '뉘른베르크 연대기'와 함께 소장 중인 '역사'(Histores, 1502)도 이번 전시를 통해 일반에 공개한다.

이외에도 '라틴어 문법'(1493), '폴리필로의 꿈'(1499), '베르길리우스 전집'(1501), '데카메론'(1522) 등 르네상스 출판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희귀본 책들이 전시된다.

세계문자박물관은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개막 이틀 전인 26일 오후 2시 박물관 강당에서 특별강연을 진행한다. 스테파노 캄파뇰로 로마 국립중앙도서관장과 스테파노 트로바토 베네치아 국립마르차나도서관장이 강연자로 나선다.

전시는 내년 1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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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모습./ 사진=국립세계문자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