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중 유일하게 전담 공무원 지정해 미서훈 독립운동가 찾아
서훈 신청 대상 중 18명 훈포장 받아…"누군가 해야 할 일, 큰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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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맞아 경남도청에 내걸린 '김구 서명문 태극기'./ 사진=경남도
김성도 독립유공자는 1919년 3월 31일 경남 김해군 하계면 진영리 시장에서 대나무에 묶은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며 독립만세를 외치다 붙잡혀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감태순 독립유공자는 1919년 3월 23일 경남 창원군 창원면 장날 때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시위를 하다 붙잡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에 처해졌다.
윤수만 독립유공자는 1932년 3월 경남 양산군에서 일본 경찰이 농민조합 간부를 체포하는 것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일본 경찰을 응징한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경남도가 어렵게 찾아낸 독립유공자란 공통점이 있다.
경남도는 2023년 6월부터 18개 시군과 협력해 증빙 자료 부족 등으로 서훈을 받지 못한 지역 애국지사를 찾아 매년 국가보훈부에 서훈(훈·포장 수여)을 신청하고 있다.
2023년 12월 24명을 시작으로 지난해 6월 6명, 지난해 8월 34명, 지난해 12월 12명, 올해 6월 26명 등 102명에 대한 독립운동 서훈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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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도 독립유공자(애족장) 판결문./ 사진=경남도
국가보훈부는 102명 중 18명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해 건국훈장 애족장·건국포장·대통령 표창 등을 수여했다.
심사를 진행 중인 서훈 신청자도 있어 독립유공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
일회성이 아닌, 전담 공무원을 지정해 잊힌 독립운동가를 꾸준히 찾는 지자체는 경남도가 유일하다.
제80주년 광복절을 앞둔 12일 경남도에서 독립유공자 찾기를 전담하는 고미란 경남도 복지정책과 주무관을 만나 미서훈 독립유공자 찾기 업무 이모저모를 들어봤다.
정부는 일제가 국권 침탈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895년 전후부터 일제가 패망한 1945년까지 독립운동에 참여하거나 일제에 항거한 애국지사를 찾아 국가유공자로 서훈한다.
올해 상반기 기준 독립유공자는 1만8천명이 넘는다.
그런데도 아직 훈·포장을 받지 못한 독립유공자가 남아있다고 한다.
고 주무관은 "과거엔 유족들이 주로 서훈 신청을 했다. 그 당시엔 자료를 챙기기가 쉽지 않았을 서민들보다 가문이 좀 되는 분들이 신청했다고 보면 된다"며 "세월이 많이 지나면서 대가 끊기거나 유족이 없어 서훈 신청으로 이어지지 못한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3·1 운동 100주년'을 즈음해 정부가 포상 기준을 완화한 점도 서훈 대상자가 늘어나는 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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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주무관은 "과거 포상을 받으려면 수형(受刑) 기간이 최소 3개월은 돼야 했다"며 "포상 기준이 완화된 후부터 감옥에 가지 않고 집행유예, 태형(笞刑), 벌금형, 노역형 처벌을 받은 애국지사들도 공적에 따라 독립유공자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서훈을 신청했다고 모두가 독립유공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고 주무관은 "독립운동 공적이 뚜렷해도 친일로 전향하는 등 식민 통치에 협력했거나, 월북 또는 광복 후 다른 범죄를 저질러 실형 기록이 있으면 심사 과정에서 탈락한다"며 "흠결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서훈 독립유공자 찾기는 한자·일본어가 중심인 오래된 서류·문서와 씨름하는 것과 다름없다.
고 주무관은 국가기록원·국가보훈부 등 국가기관이 소장한 수형인·범죄인 명부 등을 뒤지거나 독립유공 서훈자 판결문·재판기록에서 다른 독립운동 참여자 이름을 찾고, 이 참여자들의 구체적인 활동, 수형 기록을 다시 추적하는 방법으로 공적을 되살려낸다.
독립운동가 1명의 서훈 신청에 첨부할 자료를 다 갖추는 데 몇 달이 걸릴 때도 있을 정도로 지난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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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 신등·단성 만세운동 범죄인명부./ 사진=경남도
대학교수·학예사 등이 참여한 '경남도 독립운동 선양사업 자문위원단' 등 전문가들 도움도 필요하다.
서훈 기초자료가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제가 남긴 자료들이다.
고 주무관은 "일제 치하 재판·수형 관련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한다"며 "당시 신문 기사 등은 2차 자료여서 공적을 뒷받침할 객관적 자료로 인정받기가 힘들다"고 밝혔다.
고 주무관은 "직접 자료를 모아 서훈을 신청한 애국지사들이 독립유공자로 지정받아 포상으로 이어졌을 때 수고로움이 싹 가신다"며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