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충무공 탄신 480주년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

'난중일기' 친필본 포함 이순신 종가 유물 34점 첫 서울 나들이

"천하 다스릴 능력·찢어진 하늘 꿰맨 공로"…일본 유물도 주목

X

임진왜란 중 쓴 일기 '난중일기' 2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가 '난중일기' 친필본 등을 둘러보고 있다. 충무공 탄신 48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전시는 다음 달 4일까지는 무료 개방한다. 2025.11.27./ 사진=국립중앙박물관

"마음은 죽었고, 껍질만 남았구나. 목 놓아 서럽게 울부짖을 뿐이다. 하룻밤이 1년 같다. 하룻밤이 1년 같다."

1597년 10월 14일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은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겉면에 적힌 글자는 '통곡', 막내아들 면(1577∼1597)의 죽음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수많은 죽음을 맞닥뜨린 그였으나, 자식 잃은 슬픔은 피할 수 없었다.

부하들 앞에서 마음껏 울 수 없었던 장군은 외딴곳에 가서야 소리 높여 울었다. 그는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받아야 할 하늘의 재앙이 네 몸에 미친 것이냐"며 절규했다.

탁월한 전략과 전술로 우리 바다를 호령했던 '전설'도 한 사람, 한 아버지였다.

X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 쓴 일기 '난중일기' 2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가 '난중일기' 친필본 등을 둘러보고 있다. 충무공 탄신 48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전시는 다음 달 4일까지는 무료 개방한다. 2025.11.27 ./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약 430년 전 나라를 구한 영웅, 이순신 장군을 조명한 전시가 열린다. 참혹한 전란 속에서도 매일 글을 쓰고, 때로는 고뇌하며 밤새우기도 한 '인간 이순신' 이야기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8일부터 선보이는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은 전쟁과 갑옷 뒤에 가려진 이순신의 삶을 다양한 유물로 비춘다.

이순신 장군의 손때가 묻은 국보 '난중일기'(亂中日記) 친필본을 비롯해 친척에게 쓴 여러 편지, 장검 한 쌍 등 귀한 유물을 한자리에 모았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전시 개막에 앞서 27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순신을 주제로 한 전시는 처음"이라며 "유물과 그간의 연구 성과를 종합했다"고 말했다.

X

이순신의 무과 급제 교지 2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가 '무과 급제 교지'를 둘러보고 있다. 충무공 탄신 48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전시는 다음 달 4일까지는 무료 개방한다. 2025.11.27./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충남 아산의 이순신 종가에서 보관해 온 유물은 처음으로 '서울 나들이'에 나선다.

그동안 개별 유물을 전시한 적은 있어도 국보, 보물을 포함해 총 20건(34점)이 한 번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는 물론 일본, 스웨덴에서도 관련 유물을 모았다.

모두 합쳐 258건(369점), 이순신을 주제로 한 '사상 최대 규모' 전시다.

전시를 기획한 서윤희 학예연구관은 "기적 같은 일"이라며 "이순신 종가는 물론, 일본 다이묘(大名·봉건 영주) 가문까지 찾아서 설득해 전시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평소 보기 힘든 유물인 만큼, 하나하나 의미가 크다.

X

이순신의 글씨가 있는 장검 2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가 '이순신 장검'을 둘러보고 있다. 충무공 탄신 48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전시는 다음 달 4일까지는 무료 개방한다. 2025.11.27./ 사진=국립중앙박물관

특히 국보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의 경우, 복사본이나 영인본(影印本·원본을 사진이나 기타 방법으로 복제한 인쇄물)이 아닌 진본 실물을 만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전황과 전술 등에 대해 친필로 쓴 일기 7권과 친척 등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서간첩 등이 소개된다.

임금에게 올린 장계(狀啓·왕명을 받고 지방에 나가 있는 신하가 중요한 일을 왕에게 보고하던 문서) 61편을 후대에 옮겨 적어 엮은 '임진장초'(壬辰狀草)도 선보인다.

크기와 형태가 거의 같은 1쌍의 칼, 장검(정식 명칭은 국보 '이순신 장검')은 2023년 국보 지정 이후 처음으로 박물관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X

수군의 훈련 모습 '수군조련도병' 2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가 '수군조련도병'을 둘러보고 있다. 충무공 탄신 48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전시는 다음 달 4일까지는 무료 개방한다. 2025.11.27./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칼자루에는 '갑오년(1594년을 뜻함)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1795년에 간행한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속 기록과도 일치한다.

칼날 위쪽에는 이순신 장군이 직접 지은 것으로 전하는 시구가 새겨져 있다.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두려워 떨고,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이도다."(三尺誓天 山河動色 / 一揮掃蕩 血染山河)

이순신 관련 기록에 주목한 전시인 만큼 그의 삶과 정신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1592년 2월 23일 봄비에 젖었을 때는 '꽃비(花雨)에 젖었다'고 썼고, 달빛 아래 바다를 내다보면서 '출렁이는 물빛은 하얀 비단 같았다'고 표현했다.

X

노량해역에서 출수된 '지자총통편' 2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가 '지자총통편'을 둘러보고 있다. 충무공 탄신 48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전시는 다음 달 4일까지는 무료 개방한다. 2025.11.27./ 사진=국립중앙박물관

나라와 백성, 휘하 군사를 생각하며 밤을 지새우는 일도 적잖았다.

유새롬 학예연구사는 "'난중일기' 속 이순신은 완전무결한 영웅이 아니다"라며 "기록 속에서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은 한 사람의 마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공개되는 유물도 주목할 만하다.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 가문이 소장한 '울산왜성전투도' 병풍 등은 국내 관람객 앞에 처음으로 선다.

약 9천400㎞ 떨어져 있었던 두 병풍의 만남은 인상적이다.

19세기 일본에서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그림 '정왜기공도병'(征倭紀功圖屛)은 스웨덴 최대의 금융 가문인 발렌베리 가문에서 소장했던 유물이다.

앞·뒤 세트 형태로 된 병풍은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임진왜란을 기록한 채색화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두 나라에 흩어져 있던 병풍이 처음으로 한 공간에서 다시 만난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X

임진왜란 회고록 '징비록' 2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가 '징비록'을 둘러보고 있다. 충무공 탄신 48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전시는 다음 달 4일까지는 무료 개방한다. 2025.11.27./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전시는 1794년 충남 아산에 세운 '어제 이순신신도비'(御製 李舜臣神道碑) 비문 가운데 명나라 장수가 이순신에 대해 내린 평가로 그의 삶을 다시 비춘다.

"이순신은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經天緯地·경천위지) 능력과 찢어진 하늘을 꿰매고 흐린 태양을 목욕시킨 공로(補天浴日·보천욕일)가 있는 분이다."

서 연구관은 "전쟁이 끝나면 대부분 승리에 도취됐지만, 이순신 장군은 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고 부상자와 죽은 자를 돌봤다"며 그 또한 '우리들의 이순신' 모습이라고 전했다.

전시를 개막하는 28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는 무료로 볼 수 있다.

충무공 서거일인 12월 16일에도 전시를 무료로 개방해 그 뜻을 기릴 예정이다. 내년 3월 3일까지.

X

인사말하는 유홍준 관장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2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 언론공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11.27./ 사진=국립중앙박물관